본문 바로가기
음악/클래식

생상 (Saint Saens) / 백조 (The Swan)

by DAVID2 2012. 4. 3.


 Saint Saens / The Carnival Of Animal, Mov 13 'The Swan')
생상 /
조곡 동물의 사육제 中 "백조" 



프랑스 음악부흥의 선구자인 <생상>의 대표적인 작품. 1886년 샤를느 르보크가

 주최하는 사육제의 음악회에서 청중들을 놀라게 해 주려고 작곡한 작품.

모두 14곡으로 된 이 모음곡에는 당시의 사람들이 알고있는 명곡들을 삽입해

흥미를 주고 있으며, 이중 특히 제13곡의 <백조>는 독주곡으로

편곡되어 하프의 아르페지오를 타고 흐르는 첼로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호수의 여왕 백조를 방불케한다. 

 

 

 

Yo-Yo Ma / Swan



Julian Lloyd Webber

 

19세기 말에 와서는 후기낭만주의 시대가 나타났다.

즉.. 전기 낭만파보다 작품의 개성이 더욱 뚜렷해지고 주관적인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났으며, 전기의 소규모 악곡이 후기에는 대규모의 악곡으로 변모하였다.

가극, 화성법, 관현악법이 급속도로 발전하였고, 자유로운 표현에 의한 참신한

악곡이 많이 탄생하였다.

즉 (1)새로운 형식의 표제 음악이 나타났으며,

(2)음악을 극에 종속시키는 악극이 바그너에 의해 나타났다.

(3) 오페라에서는 사실주의와 민족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작품이 나타났고,

(4) 발레 음악이 출현하였으며,

(5) 단악장 형태의 교향시가 나타났다.

(6) 화성이 극도로 발전하여 무조적인 경향으로 나아갔으며

(7) 브람스와 같이 신고전주의의 강한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였고,

(8) 금관 악기의 현대적 개량으로 다양한 관현악의 편성이 이루어 졌고,

(9) 표제적인 교향곡, 교향시, 교향적 모음곡, 연주회용 서곡 등의

악곡 형식이 보급되었다.
1886년 그가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쿠르딤에서 사육제(Carnaval) 시즌을

보내면서 친구인 Charles Lebouc가 주최하는 마르디 그라(사육제의 최종일)의

음악회를 위하여 작곡하였으며, 3월 9일 작곡가 외 몇 사람의 음악가에

의해 초연 되었다. 51세의 이 작곡가는 이 무렵 바그너파의 평론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프라하와 비인 이외에서 연주를 금지 당한다고 하는 일종의

실의의 시기에 있었다. 부제를 <동물원의 대환상곡>이라 한 이 곡은 여러 가지

동물의 음악적 이미지에 핑계하여 축제 기분을 나타내는 한편 세속이나 딱딱한

 비평가들도 비꼬아 주려고 하는 기분이 넘친 기발한 랩소디풍의 모음곡이다.
* 모두 14곡으로 이루어진 "동물의 사육제"중에서 제 13곡인 "백조"가
가장

유명하여 독주용으로 편곡한 독주곡을 많은 첼리스트들이 즐겨 연주하고 있다.
물 위에 앉은 하얀 백조의 깨끗하고 고고한 자태를 묘사한 이곡은 여러

첼리스트의 첼로 소품집마다 거의 빠짐없이 수록될 정도로 인기가 있는 명곡이다.

청순하면서도 새하얀 백조가 잔잔한 호수 위를 우아하게 헤엄쳐 가는 모습을

표현한 곡으로 첼로의 선율은 백조를 상징하고 하프를 곁들인 관현악은

호수를 상징하는 전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생상 [Saint-Saens, Charles Camille / 프랑스 파리 출생 1835~1921]

숙모에게서 처음 피아노를 접하고 스타마티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7세 때 피에르 말댕에게 작곡을, 보엘리에게서 오르간을 배웠다.

10세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여 천재적 기량을 발휘 하였다.

1848년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여브누아와 알레비에게 각각 오르간과 작곡을

사사받았다. 1853년 파리 생마리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이 교회에서

즉흥연주를 들은 리스트로부터 <이 시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고 격찬을 받았다.
1861~65년 니데르메이에르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였고 이 때 제자로 메사레,

포레 등이 있었다.

1867년 칸타타 《프로메테우스의 결혼》이 세계박람회 기념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871년 국민음악협회를 설립하여 신작 연주를 장려하였으며 , 이 때 포레,

프랑크, 뒤카, 라벨, 드뷔시 등의 작품을 소개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는 1886년까지 이 협회의 지도자로 있으면서 작곡활동을 하였다.
1888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고독한 방랑자가되어 미국에서 동양까지

 여행하였는데, 특히 알제리와 이집트는 그가 마음에 들던 곳으로 1880년

관현악곡《알제리 모음곡》 1891년《아프리카》
1896년 피아노 협주곡《이집트의 풍》 등의 작품을 남겼던 곳이기도 하였다.

1886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의 위촉으로 제3교향곡 《오르간》 을 작곡하고,

 1892년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 행진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921년 그가

사랑하는 곳 알제리로 다시 찿아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여러 장르에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당시 프랑스 음악계의 주류를

이루던 오페라를 13곡 작곡하는 등 힘을 쏟았으나, 오늘날 《삼손과 데릴라》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공연되지 않으며, 빈의 음악형식에 따른 소나타,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교향곡에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그는 독자적인 길을 추구하기보다는 갖가지 요소를 융합하거나 양식에

순응하면서 변화를 주는데 재능이 있었다.

작품의 특징은 고전적인 형식감과 절도를 중시하였으나, 섬세하고 우아한

표현과 색채적 감각이 뛰어나다.
대표작품으로 《삼손과 데릴라》를 포함한 오페라, 5곡의 피아노 협주곡,

3곡의 바이올린 협주곡, 《동물의 사육제(謝肉祭)》를 포함한 관현악곡·

실내악곡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