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교향시 <장례식>은 폴란드의 시인 미키에비츠가 쓴 동명의 시에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미키에비츠의 시 ‘장례식’ 속의 주인공 구스타프는 마리라는 여인과 결혼한 후에
자살하게 되는데, 말러는 아마도 자신과 똑같이 구스타프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는 그에게도 찾아오게 될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장례식>을 바탕으로 하는 교향곡 2번의 의미 대해 말러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제1악장을 ‘장례식’이라 칭한다. 그것은 <교향곡 제1번 D장조>의 영웅의 장례식이다.
그리고 그 답은 마지막 악장에 나타난다.”
말러는 예술과 인생을 분리시키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전 생애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집착했던 말러에게 있어서 교향곡이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자 대답이었다.
말러는 교향곡 2번에서 한 인간의 죽음을 지켜보며 이렇게 묻는다. ‘인생은 그렇게 헛된 것인가?’
말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해낸다.

말러의 음악을 깊이 알고자 한다면 우선 그의 '정신 세계'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이면에는 그의 개성이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러의 종교적 및 철학적 사상은 전체적인 그의 작품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종교적 감정, 주변 세계에 대한 시각, 미학적 관점 등 말러의 모든 사상들은 그의 음악 속에 녹아들어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말러는 1860년 7월 7일 보헤미아의 칼리슈트에서 유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태인이었으나 항상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싶어하다가 37세 되던 해에 결국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그리고 카톨릭의 신비주의와 종말론에 심취했다. 그렇지만 유태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다같이 묘한 균형을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유태인 태생이라는 상처를 지니고 있으면서 그리스도교 사회에 융화하려고 애썼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는 사람이어서, 오스트리아에 가면 나를 보헤미안이라 하고, 독일에 가면
오스트리아인이라 하고, 보헤미아로 돌아가면 유태인이라고 한다.“
이렇듯 자신의 출생 배경에 대한 심한 콤플렉스를 가졌던 말러는 어린 시절에도 결코 행복하지못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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