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
김추자
박인수(라이브 버젼)
이은미
한국 락의 살아 있는 전설, 신중현
그의 이야기는 어린시절부터 시작해야 한다.
1938년 1월 4일에 태어난 신중현은 초등학교까지는 유복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해방이후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불행은 시작되었고 피난 생활 도중 아버지 건강이 나빠지면서
가세는 기울었다. 급기야 부모님과 여동생이 죽으면서 신중현은 고아가 되었다
남동생을 시골 친척집에 맡기고 서울에 올라온 신중현은 친척이 운영하는 '상수제약'이라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어린 나이에 벌써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런 힘든 생활 중에 유일한 취미이자 탈출구는 기타였고, 그의 노래에 가득 담겨 있는
고독과 외로움은 아마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 항상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1957년에 미8군 오디션을 본 신중현은 당장 내일부터 나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문제는 기쁜 나머지 덜컥 전자 기타와 앰프가 있다고 거짓맛을 해버린 것이다.
돈이 없어 기타와 앰프를 사지 못하고,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던 신중현은 우연히 옛 상수제약에서
같이 근무했던 친구를 만나고, 사정을 들은 그 친구가 흔쾌히 기타와 앰프를 사주면서
신중현의 본격적인 음악 인생이 시작되게 되었다.
미 8군에서 신중현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다. 작고 마른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폭발적인 연주가
미국 사람들에게는 신기했든지 신중현은 점점 유명연주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1960년경, 그의 첫 기타 독주무대가 용산역 앞 미군 정보부 소속의 시빌리안 클럽에서 열렸다.
클럽 책임자가 신중현에게 Virtues의 Moogie Shuffle 이 담긴 음반을 주며 그 곡을 독주무대에서 산
연주하라고 했다. 시빌리안 클럽은 당시 국내에 주둔한 미군 중에서도 고위층에 있는 군인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는데, 정보부 군인은 평상시에도 사복을 입고 다니는 좀 고급스럽고 특수한 군인이었다.
그런 군인들이 부부동반으로 그의 독주 무대를 구경했다.
하여간 그는 최선을 다해서 연주했다. 연주가 끝났으나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앞을 좀 똑똑히 보라"고 했고,
그가 정신을 차려 앞을 자세히 보니 모두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그의 음악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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