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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문학·예술

Van Gogh 그림 감상 (1)

by DAVID2 2012. 5. 22.

Vincent Van Gogh
Dutch(Hollander) Painter,  Post Impressionism
1853. 3.30 ~ 1890. 7. 27

 

미술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반 고흐의 작품을 보노라면 친근감과 마음의 평정을 느낄수 있어 좋다.

오늘부터 5회에 걸쳐 블로그상에 반 고흐의 작품 전시의 기회를 가져볼까 한다.

한편 배경음악은 Don McLean이 부르는 Vincent로 반 고흐와 바로 아래의 그림 풍경을 노래하는 곡인데

이 가수를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돈 매클린 또는 돈 맥클린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발음은 돈 맥린이 맞다고 한다.

(2008년 그의 내한공연 Flower Concert에 직접 가서 그에게 들은 내용임)


 

 

 La nuit etoilee, Arles <Starry Night over the Rhone>
Oil on canvas 1888. 9, 92 x 72.5 cm
Musée d'Orsay Paris France
 

테오에게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맑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男女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져갈 수 있을까?
트왈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
-1888년 6월-

아를(Arles)에 도착해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Wheat Field with Cypresses
Oil on canvas 1889, 93.4 x 73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Manhattan New York USA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항상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것을 소재로 '해바라기'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이프러스 나무를 바라보다 보면 이제껏 그것을 다룬 그림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사이프러스나무들은 푸른색을 배경으로, 아니 푸른색 속에서 봐야만 한다.”
-1889. 6.25-

사이프러스 나무는 고흐의 희망의 상징과도 같았다.
“네가 품고 있는 자연에 대한 애정을 잘 간직하렴.
그것만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란다.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자연을 볼 수 있게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지.“
-1874년 1월- 


 

 

 A Girl in White in the Woods
Oil on canvas 1882
Kroller-Muller Museum Netherlands

“숲에서 습작한 다른 그림은, 마른 나뭇잎이 널려 있는 땅 위에 우뚝 솟은 커다란 초록의 너도밤나무
줄기와 흰옷을 입은 작은 소녀의 모습을 담고 있어.
이걸 그릴 때 아주 어려웠던 점은, 일정하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는 나무줄기 사이에 적절한 공간을 주면서,
원근법에 따라 변하는 줄기의 형태와 굵기를 그려내는 동시에 그림을 밝게 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숲에서 숨쉬고, 걸어 다니고, 나무 냄새를 맡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그리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1882. 8. 20-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초기의 그림이다.
“그 어떤 어려움도, 근심거리나 장애물도 없는 상태로 자신을 방치해서는 안돼.
너무 쉽게 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
교양 있는 계층에 속해있고 훌륭한 지인들이 많고 또 가장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해도 로빈슨 크루소 같은 자연인의
본성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어야 해. 그것이 없다면 자신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뿌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영혼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를 수 있도록 해야 해.”
-1878년 4월 3일-

반 고흐는 25살의 젊은 나이임에도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끊임없는 노력이
언제나 그의 가슴 속에 불꽃처럼 살아있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Sower with Setting Sun (After Millet)
Oil on canvas June 1888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베르나르에게
“ <씨 뿌리는 사람>의 스케치를 보내네.
흙은 온통 파헤쳐진 넓은 밭은 선명한 보랏빛을 띠고 있네.
잘 익은 보리밭은 양홍 빛을 띤 황토색이고 하늘은 황색 1호와 2호를 섞어 칠했는데,
흰색이 약간 섞인 황색1호 물감으로 색칠한 태양만큼이나 환하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주로 노란색 계열이라네.
<씨 뿌리는 사람>의 상의는 파란색이고 바지는 흰색이네.”
-1888. 6. 18-

그가 존경하던 밀레의 모작이다.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한다.”


 

 

 

 Café Terrace at Night
Oil on canvas September 1888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야.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는데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리는 것은 나를 매우 설레게 하지.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했고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정말 즐거웠어.”
-1888. 9-


여동생에게 쓴 편지이다.
짙은 파란 색과 밝은 노란색의 강렬한 색책대비의 그림으로
반 고흐는 독자적인 색체 사용과 개성적인 형태를 통해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과
그의 격정적인 내면세계를 가장 적출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찬란한 색채대비가 눈이 부신 설레임으로 다가 온다.


 

 

 

 Park with a Couple and a Blue Fir Tree
Oil on canvas October 1888
Private collection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니?”
 



 

 

 Amandelbloesem Saint-Rémy
Oil on canvas 1890m 73.5 x 92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사랑하는 어머니께

“사실 전 태어난 조카(테오의 아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기를 무척 원했답니다.
요즘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제 이름을 땄다고 하니, 그 애를 위해 침실에 걸 수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아몬드 꽃이 만발한 커다란 나뭇가지 그림이랍니다.”
-1890. 2.15. 빈센트 올림-

‘빈센트’라는 같은 이름으로 인해 불우한 자기 삶을 닮을까 우려하는 마음이기에 어린 조카의 앞날을 막고
싶지 않았던 삼촌으로서, 사랑하는 조카를 위해 그린 그림으로 드물게 포근하고 따뜻하고 화사한 느낌이다.
테오의 부인 요한나는 단 5일밖에 만나지 못했던 아주버니를 존경하고, 그 존경심으로 첫째 아들의 이름을
<빈센트>라고 지으며 반 고흐에게 그 누구보다도 다정하게 존재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반 고흐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여자이기도 했다.
반 고흐가 사망한 뒤, 이어서 결혼 한지 1년 반 밖에 살지 못하고 남편 테오도 사망했는데,
그 이듬해인 1901년 화가와 재혼하여 미국으로 이민 갔지만 고흐의 편지를 편집하고 번역하거나 그의
작품들을 관리하고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오늘 날의 고흐가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덕이다.
고흐가 죽은 지 채 10년이 안 되어 그를 위대한 천재의 반열에 올려놓고 1925년 사망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반 고흐의 작품은 우리 곁에 남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고흐의 이름을 딴 요한나의 아들이자 고흐의 조카이기도 한 빈센트 빌헤름 반 고흐는 빈센트 사후 빈센트의
천재성을 널리 입증하고 1978년 사망했다.


 

 

 

 Noon Rest (After Millet)
Saint-Rémy
Oil on canvas January 1890
Musée d'Orsay Paris France
 

“바로 그거다. 밀레의 그림 ‘만종’ 너무나 훌륭하다. 그것은 詩다.”
-1874년 1월-


이 평화스러운 이미지의 작품은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모방한 다섯 점의 커다란 작품 중 하나다.
열심히 땀 흘려 쌓아올린 낟가리의 그림자 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부부와 어우러진 햇살이 마냥 따사롭다.
남자는 신발을 벗어놓고 있는데 신발은 고흐에게 삶 전체에 걸친 진정하고 건강한 발전의 상징이며,
나란히 놓인 두개의 낫은 부부의 다정함을 그대로 보여 준다.
수많은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붓질은 보통 격정을 암시하거나 후광의 효과를 만들 때 사용되었지만,
이 그림에서는 긴장된 삶으로부터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눈부실 정도로 다채롭게 표현되었다.
건강한 노동...사랑..행복, 시적인 아름다움이 넘치는 대작이다.
“더 우월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살아가는 내내 노력과 일의 흔적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1889. 5-

 

 

 

 The Potato-Eaters
Oil on canvas 1885
Rijksmuseum Vincent van Gogh Amsterdam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등잔불 밑에서 감자를 먹는 이 사람들이 접시에 가져가는 바로 그 손으로
감자를 수확했다는 사실이다.
이 그림은 육체노동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음식을 벌었는가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고흐의 그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고흐가 ‘회화’라고 인정한 첫 작품이기도 하다.
고흐는 이 그림을 “살아서 호흡하는 최고의 작품”이라고까지 묘사했다.
“우리들 문명화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활 방법이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
따라서 누구나 다 갑자기 이 그림을 좋아해주기 바란다든가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는 귀부인 같은 사람보다도 소박한 모습 그대로의 농민의 딸이 훨씬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먼지투성이이고 발기발기 기운 흔적 투성이인 푸른 치마를 입은 농민의 딸이…
이런 그림은 도시인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리라. …
농민의 생활을 그린다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예술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진실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들
그리고자 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 자신을 책망하지 않을 수 없다.”
-1885년 4월 30일-

그는 가난한 삶과 등골이 휘는 노동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목적 때문에 어두운 암갈색과 흙색을 많이 사용했다.
명망 있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당시 유행하던 인도주의의 영향을 받아 목사의 길을 선택했다.
근엄한 성직자라기보다는 온 몸으로 하나가 되고 싶어 했던 고흐와의 괴리로 결국 부목사 직에서 파면된다.
항상 종교가 제도화되고 기득 세력이 될 때 생길 수 있는 그늘진 어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과격한 결벽성으로
결국 목사의 길을 포기했으나, 인도주의의 복음은 포기할 수 없어 벨기에 인근의 탄광촌에서 평신도 선교사의 삶을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 조용하고도 차분한 성서와의 삶을 살았기도 한 시기이기도 했다.

어느 문화권에서도 비슷하듯 언제나 생명의 위협 속에 지하 생활을 해야 하는 광부의 삶은 인생 막바지에서
선택되는 길인데, 그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외적으로 보기에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이들의 삶에서 성서적인
생기와 감동을 받게 된다.
하느님만을 따르며 정직한 삶을 우직하게 살아가는 광부들의 삶에서 숭엄한 기품과 행복을 발견하고 이것을
작품으로 세상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
반 고흐는 이 작품을 통해 가난은 비참이요 인생의 실패로 여겨지는 세상 안에서 정직한 삶의 밝은 표현으로서의
가난의 긍정적인 모습과 건실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계급의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그리고 있다.
등잔불아래 모여 앉은 풍경이 어떤 부자의 풍요로운 식탁 못지않게 따스한 인간미의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반 고흐는 이런 풍의 작품을 통해 행복한 가난의 메시지를 힘차게 외쳤으나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이 빈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Cottages with Thatched Roofs
Auvers-sur-Oise
Oil on canvas June 1890
Musée d'Orsay Paris France
 

“이곳은 진짜 시골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파리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단다.
물론 도비니의 풍경화에서 보는 시골과는 많이 다르지만 말이야.
그래도 더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초가든 새로 생긴 현대식 주거 지역이든
모두 밝은 햇빛으로 환하게 빛나고 또 꽃으로 가득 덮여 있거든.”
-1890년 5월-

생 레미 병원에서 나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와서 초기에 쓴 편지로

잠시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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