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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클래식

52. 20세기 (Twentieth Century) 음악 - 인상파와 그외 프랑스 작곡가들

by DAVID2 2014. 4. 23.

 20세기 (Twentieth Century) 음악 - 인상파와 그외 프랑스 작곡가들


현대음악의 특징인 다원주의와 불협화음은 통일된 세계상의 결핍, 인간과 자연의 조화상실, 인간의 내적 부조화를

증거하는 것이다.가장 아름다운 예술 중의 하나가 음악이라는 과거의 미적 작고고 원칙은 근본적으로 부정된다.

이제 음악이 무조건적으로 '아름답다'든지 조화스러워야 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진실'해야 하기 때문에

추(醜)할 수도 있다. '음악'과 '음악예술작품'의 개념에 대한 태도가 변한다. 20세기의 음악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적 현상들을 관철시켜, 이것이 옛 음악관과 함께 병존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새로운 현상들에는 신고전주의와 같은 보편적 양식도 있고, 수많은 개성적 해결 방안의 것들도 있다.

다양성은 이해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악파, 지향성, 유행성, 모델은 점차 빠르게 변화하여

지속성을 띠지 못한다. 보편적인 구분, 즉 기악과 성악, 오페라, 교향곡, 소나타 등의 구분이 20세기에는

더욱 명확한 것이 못된다. 예외와 혼합, 그리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서양음악이 이국적 요소를 도입하는데 그쳤으나, 20세기는 이국의 문화와 음악으로부터 서양음악의

존립과 표현을 위한 내적 자극을 찾으려고 한다. 특히 인도를 비롯한 동양음악은 높은 정신성과 섬세한 음악 전통으로

매력적 자극제가 되고 있다. 작곡가들은 새로운 것을 연주 기술면에서도 찾았다. 이제까지의 악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이다. 20세기의 기본사고에 따라 모든 것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서 해당 악기의 원래 목적을 크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세계 곳곳의 악기를 구입하거나 제작하여 사용하거나 새로운 악기를 발명하기도 하여 새로운 음향을 찾는다.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프랑스의 드뷔시가 창안한 인상주의 음악은 낭만주의에서 현대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악파이다.

이 음악은 프랑스의 인상파의 회화와 상징문학에서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 인상파 회화에서는 빛과 그림자를 중시하는

야외 회화를 주장하였고, 형태를 그리는 선보다는 색채와 분위기적 인상을 중시하였다.
음악에 있어서도 이와 흡사하여 선율이나 형식의 명확성 대신에 감정을 강조하는 색채적 음악을 썼다. 자연계의 여러 가지 현상,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외계로부터의 자극에 대하여 예술가가 받은 순간적인 감응이며 응답이다. 그러므로 인상이란 외계의

묘사가 아니라 한번 마음에 자극된 내적인 인상을 결국 주관적으로 표현한다.

따라서 음악의 다이내믹한 감동보다는 음빛깔, 뉘앙스의 미묘한 변화를 표현한다. 기법상으로는 화음진행이 색채적이고,

연속적인 불협화음과 선법, 5음음계등 예외적인 음계 등을 사용하였다.
드뷔시는 1892년에 말라르메(S, Mallarme, 1842∼1898)의 상징시에 작곡한 《목신의 오후에서의 전주곡》으로 

인상주의 수법을 확립시켰다. 그 외에도 관현악 작품《녹턴집, Nocturnes》《영상 Imagine》

《바다 La Mer》가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품들이.

 

인상파와 외의 20세기에 활동하였던 프랑스 작곡가들로는 Gabriel Faure, Erik Satie, 

 Francis Poulenc, Darius Milhaud, A. Honegger 등이 있다.

 

 

 

 

C. Debussy / The girl with the Flexen Hair (Joshua Bell / Violin)

John Williams & Julian Bream(기타 연주)
프랑스 작가인 르콩트 드 릴의 시에 나오는 소녀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다정하고 감미로운 화음의 곡. 이곡은 원래 피아노 곡이지만 바이올린, 하프로도
많이 편곡되어 연주되도 한다. 조용하지만 슬픈 애절한 사랑에 어울리는곡.
Prélude a l'après-midi d'un faune
Conductor: Celibida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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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Debussy, Achille Claude, 1862~ 1918, 프랑스)

드뷔시는 파리 근교 전원도시 상 제르망 안 레이에서 1862년에 태어났으며 도자기상을
하는 아버지는 그를 해군에 보내려 했으나 모테 부인으로 인해 처음 피아노를
접하였는데, 놀라운 음악적 재질을 보여 11세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11년간
그곳에서 공부하였다.
드뷔시는 프랑스가 낳은 20세기의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다.
정묘한 감각주의로 20세기음악의 진로를 결정지었으며, 프랑스의 자존심을 되살린
드뷔시는 상징주의가 시의 세계에서, 인상주의는 그림의 세계에서 일어나듯
이 두 큰 조류가 음악, 즉 드뷔시 안에서 합류되었다.
상징파 시인 '말라르메'의 집에서 모임에 참여하면서 인상파 예술가들의 친교를 나누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양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889년 독일 바이로이트로 건너가 바그너 음악에 몰두하다가 싫증을 느끼고
반바그너주의자가 되었고 심지어 베토벤 브람스까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1884년 22살 때에는 칸타타<방탕아>로 로마 대상을 받아 로마로 유학하였음.
주요작품은 '아라베스크' '달빛' '목신의 오후 전주곡' '바다' '세개의 녹턴'을 비롯하여
관현악곡, 실내악곡, 성악곡, 피아노곡,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Maurice Ravel /  BOLERO

 

Wiener Philharmonic
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Ensemble DITTO

Ravel / La Valse

Yuja Wang, Piano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년 3월 7일 ~ 1937년 12월 28일)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은 프랑스의 서양 고전 음악 작곡가이다.

관현악곡인 볼레로로 유명하며, 전람회의 그림의 관현악 편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다채로운 음색과 악기의 사용으로 유명하다.

그는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Ciboure에서 바스크계의 어머니와 스위스인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의 음악적 재능을 키워 주기를 원하여 그를 14살 때 파리 음악원으로 보냈다.

피아노와 작곡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재학 중 발표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현악 4중주곡 바장조>에서

새로운 경향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서 그는 ‘아파치’라는 작곡가 학생들의 모임에 가입했는데,

이는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모임으로 유명했다.

파리 음악원에서 라벨은 가브리엘 포레에게 음악을 배웠다. 음악원에 있는 동안 로마대상을 받으려고 했지만 받지 못했다.

 그가 충분한 재능이 있었음에도 대상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나서 그는 음악원을 떠났다. 라벨은 드뷔시에게

영향을 주었고, 재즈와 아시아의 음악, 그리고 유럽 전역의 민요와 스페인 음악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라벨은 종교를 가지지 않았으며 무신론자로 보인다. 그는 바그너의 음악처럼 공공연히 종교적인 색채를 부여한 음악을

싫어했으며, 대신 고대 신화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 편이었다.\

라벨은 결혼한 적이 없지만, 오랜 관계를 맺은 상대는 있었다. 또한 파리의 사창가를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때 그는 불타오르는 애국심 때문에 군대에 지원했지만 몸이 약했기 때문에 프랑스 부상병을 옮겨 주는

운전사 생활을 하였다.1932년에 심한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그의 건강은 악화되었다. 1937년에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수술을 받았지만 실패하여 사망했다.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라벨의 복잡하고 정교한 음악에 빗대어 그를 “스위스 시계 장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 당시 라벨은 그를 천재라고 극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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