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러의 사회적 직업상의 출세는 어찌나 갑작스러웠는지 거의 혜성과 같았다. "꿈같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리인 빈 궁정 가극장의 예술 감독이라는 지위를 차지했을 때 그의 나이는 겨우 서른 일곱 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휘자로서 아무리 성공했더라도 그는 자신의 직업에 완전히 불만이었다.
그는 작곡을 위한 자유로운 시간을 전혀 남겨두지 않는 노예같은 오페라 일에 대해서 자주 불평하고 했다.
그래서 평생 동안 여름철에만 작곡에 시간을 바칠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스스로를 "여름
작곡가"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널리 찬사를 받았던 개성적인 관현악법은 지휘자로서
풍부한 경험을 얻었기 떄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주요작품인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탑 속의 수인의 노래>>, <<나는 세상에 버려져>>,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읜 가곡과 대작 성악곡 <<대지의 노래>>등은 모두 비관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그가 심취했던 쇼펜하우어의 염세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말러는 항상 의혹과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생을 보냈다. 첫째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질적인 심장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유태인이면서도 카톨릭으로 개종한 종교적 콤플렉스, 즉 민적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문제로 늘 고민했다.
그의 교향곡은 자기를 괴롭히는 의문과 불안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얻으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작품도 베토벤처럼 후련한 최후의 승리를 쟁취하지는 못한 듯하다.
이런저런 의문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그의 예술은 어쩌면 불안과 의문투성이의 20세기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민과 부합되어 많은 사람들의 공명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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