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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신흥사

by DAVID2 2013. 11. 6.

그간 설악산은 여러차례 방문하였지만 주로 비선대나 비룡폭포 쪽으로 많이 다니다 보니 신흥사에는 들러본 것이 수십년 된것 같다.

이번에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정말 오랫만에 신흥사를 섭렵해 보았다.

입구의 거대한 좌부처상에 비해 막상 신흥사 자체는 그다지 볼거리는 없었는데 울산바위를 뒤로한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것 같다.

오늘은 설악산 입구에서 신흥사길과 신흥사의 사진들을 올린다.

 

 

신라 진덕여왕 6년(서기652)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향성사(香城寺) 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불교의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이라는 글에서 따온 것인데 중향성은 금강산 철위산(鐵圍山)을
의미하며 불토국은 부처님께서 교화 할 대상적 국토라는 의미와 정치적 형태의 국가라고 하는 뜻과 어울린 말이다.
처음 향성사지는 지금의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져 46년간 존속하다가 효소왕 7년(서기 69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당시 9층이던 향성탑이 현재 켄싱턴호텔 앞에 3층만 남아 있어 옛 향성사의 역사를 말해주듯 옛날을 잊지 않게 하고 있다.
향성사가 화재를 당한지 3년 후 의상조사께서 능인암(현재 내원암)터에 다시 중건하고 사명을 선정사라고 개칭 하였다.
그 후 946년간 수많은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 정진하여 왔으나 조선 인조20년(서기1642)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여 소실된 것을
 2년후 영서(靈瑞), 혜원(惠元), 연옥(蓮玉) 세분의 고승들께서 중창을 서원하고 기도 정진 중 비몽사몽간에 백발신인이 나타나서
지금의 신흥사 터를 점지해 주며 “이곳은 누 만대에 삼재가 미치지 않는 신역(神域)이니라” 말씀 하신 후 홀연히 사라지는
기서(奇瑞)를 얻고 절을 중창하니 지금의 신흥사이다. 절 이름을 신인(神人)이 길지(吉地)를 점지해 주어 흥왕하게 되었다
하여 신흥사(神興寺)라 한 것이다. 6·25사변때 고성군 건봉사는 전소되었고 영북지역의 대본산 기능이 마비되었을 무렵
고암, 성준 두 스님의 원력으로 여기 신흥사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하여 업무를 이관하게 되었다.
이후 신흥사는 영동지역의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불사를 전개해 나갔다.
속초노인복지관을 개관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사회복지사업에 헌신하는 한편, 춘천에는 불교방송지국을
개국하여 포교에 전념하는 사찰이 되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자 신흥사가 과거의 신흥사가 아니라 새로운
신흥사가 되었다며 신흥사의 귀신 신자(神字)를 시대에 맞게 새로울 신자(新字)로 고쳐 사용하자는 중론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1995년부터 영동불교를 새로 일으킨다는 서원을 담아 사명을 신흥사(新興寺)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흥사 홈페이지에서)
 
 

 설악산 입구에서 

 

 

 
 
 
 
 신흥사 입구 다리에서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울산바위
 
 
멋지게 단풍이 든  신흥사 담위의 담쟁이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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